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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인사

모희 (페리지갤러리 큐레이터)

 시간은 발명되었다. 다가올 시간에 ‘내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때를 기다리고, 이미 지나간 –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 순간에 과거라는 의미를 덧입힌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어떤 것은 다가오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약속을 믿는다. 문민은 시간을 닮은 빛깔과 모양의 덩어리를 짓는다. ‘그린다’고 쓰지 않고 ‘짓는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시간을 들여, 시간 안에서 제시하는 것들이 세우거나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민은 그림과 글을, 이미지를, 일정한 부피와 무게의 덩어리를 만들어 내일을 짓는다.

 지어진 내일이 도착한 곳에는 언제나 빛이 있다. 정확히는 빛을 그리기 위한 어둠이 있다. 문민은 먹으로 칠한 어둠으로부터 빛을 꺼내 온다. 빛-어둠으로 한데 뭉쳐진 것은 서로 다른 속성의 재료들이다. 친숙하지만 유약한 물성 탓에 다루기 어려운 닥종이는 작가의 손을 거쳐 질기고 촘촘한 반죽으로 빚어진다. 미리 세워둔 뼈대 위로 밀도 높게 쌓인 닥종이는 곧 이미지가 안착하기 위한 여백으로 자리 잡고, 시선은 다시 바깥을 향한다. 저마다의 시점과 맥락으로 각인된 주변의 이미지들은 뭉그러진 화폭 위로 더해지기를 반복한다. 어느 순간 단번에 식별하기 어려운 혼탁한 이미지가 된 채, 섬광처럼 스쳐 간 장면의 틈새를 메운다. 이 과정에 활용되는 ‘금속성 템페라(Metallic tempera)’는 작가가 금속 분말을 안료와 함께 아교에 개어낸 재료다. 포개진 연약함과 단단함은 스스로를 받치던 지지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속이 빈 껍데기로 돌아간다. 작품을 빙 둘러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매번 다른 밀도와 두께, 형과 색을 입은 물질이 있다. 이때 시간은 새겨진 표면의 정지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따라 여전히 흐른다. 달리 다가갈 수 없는 견고함과 얇게 굳은 위태로운 형상들. 이 양가적인 속성으로부터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작가가 느꼈을 얼마간의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복기”하며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다가올 필연적인 소멸을 앞당겨 경험하는 일이다.1 그럼에도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는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무엇도 부패하지 않는 순간들이 이따금 찾아온다.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를 마주할지라도, 그때의 우리는 자유로운 지속을 누린다.2 문민이 짓는 〈내일〉은 그런 시간을 품으며 지금이라는 유일한 시간을 다시 묻는다. 내일의 인사는 내일 하는 인사가 아니라 내일이 올 때까지 하는, 지금의 인사다.3



1 문민, <내일 no.15_내일을 복기한다는 것은>, 2026, Black ink and metallic tempera on handmade paper, 176x71x52cm.
2 크리스티앙 보뱅, 신승엽 옮김, 『세상의 빛』, 더서클프레스, 2026, p.27-28.
3 신원경, 『축소모형』, 문학과지성사, 2025, p.19. “마지막 인사는 마지막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마지막이 올 때까지 하는 인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