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
(Unless you’re swimming in free time, I wouldn’t suggest reading it with too much attention)
파도 소리에 묻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 더 이상 전체의 부분이 아니지만, 여전히 중력의 끌어당김에는 저항하는 것
- OO은 침식으로 인한 연속적인 변형 과정에 놓여 있다.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그 OO은 영원을 가장한 일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결국 그리고 필연적으로 OO은 파도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환영적 공간과 일시 정지된 순간의 드라마
-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고인 물 웅덩이로, 하수구로, 하수구에서 바다로, 다시 강으로, 혹은 물 웅덩이로
- 강에서 하수구로, 하수구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고인 물 웅덩이로, 다시 바다로, 혹은 강으로
- 하수구에서 고인 물 웅덩이로, 물 웅덩이에서 바다로, 강으로, 강에서 하수구로, 다시 바다로, 혹은 물 웅덩이로
- 고인 물 웅덩이에서 강으로, 강에서 하수구로, 바다로, 바다에서 물 웅덩이로, 다시 하수구로, 혹은 강으로
‘작가’란 일종의 현상이다. ‘나‘라고 칭하는 것과 ’자아‘ 는 결국 유동적인/유연한 패턴. 거울을 볼때마다 내가 가장 크게, 혹은 빈번하게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어색함’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적확한 수식어로 설명하기 힘든 매개/현상으로써 존재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부인할 수 없는 물리적 작용의 흔적을 지닌채로, 변화를 잠재하는 나의 작업은 보다 본질적인 ‘나’에 해당하는 무언가이다_[거울에 비친 그럴싸한 껍데기/육신]-[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파편들이 알 수 없는 구조로 뒤죽박죽/얼키고설킨 머릿속]의 집합으로써의 ‘나'에 비해. 적어도 내 작업은 정교한 언어로 규정하기 보다 모호한 선문답의 형태로 제시하고 싶은 바램이다. 또한 그것으로 유효할 수 있기를.
[지금, 여기] 에 대해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장소‘, 삶이라 부르는 일상의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시간-공간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것인지, 애초에 그런 흐름 따위와는 별개의 인과로 어느 순간 덩그러니 남겨져버린 것인지.
빛은 존재하는 순간, 일말의 속도 변화 없이 빛 본연의 속도로 나아간다. 빛은 정지할 수 없다/정지하지 않는다. 빛은 단 한번도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버티면 하루는 오고, 그 하루를 오게 하는 빛은 생을 잇게 하고야 말고.
그 누구도 본 적 없으나, 숨 쉬고 사는 누구나 찾아오리라 믿는 것 — ‘내일’은 존재한 적 없으며, 늘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나는 여전히 남아있다.
회화는 여러 매체들이 등장해도 회화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조각은 실제와 감각을 경쟁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를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
그렇다면 조각/설치의 용법을 차용하는 메타회화(회화 기반의 부피를 지닌, 벽에서 내려온 어떤 것)는 매체 자체에 대한 고찰의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볼 수 있는가.
- 박이소는 자기작품을 "부족함과 미완성을 긍정하면서 답답한 한계를 시원하게 넘어서려는 자포자기적인 희망같은 것" 이라고 말했다.
‘여덟번째 날'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OO 혼탕', ‘OO Melting Bath’, ‘자아 혼탕', ‘Selves Melting Bath’, ‘Ego Melting Bath’, ‘Will to silence_침묵의 의지'
“무언가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내러티브가 없다면, 관객은 반대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본다는 행위]가 부여하는 즉각적/감각적 경험에 보다 집중 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작업은 단일 오브제나 장면보다는 ‘태도’, ‘형식’, 그리고 삶과 감각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감각 자체를 더 중요한 문제로 삼는 것인가
아무리 헤집어도 늘 빈칸 뿐인 시간을 채우는 것
찰나를 영원으로 바꾸기 위해
현재라는 시간성이 현실을 이루는 방식을 통찰하는 것
세상을 단일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로 보는 게 아닌, 끊임없이 변주되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리듬과 패턴으로 보는 것
완성된 이미지로서 완결되지 않은 것을 만드는 것. ‘붓만 굴리는 것’과 내가 ‘내 화면에 책임을 지는 것’. ”작업에 즐거움이 빠지면 노동밖에 남지 않는다“
언어 이전의 형태, 형태 이전의 형상. 원근, 대상, 대상과의 거리, 대상이 되는 것, 응시, 시선
그림으로 하여금 조각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하는 방식/조각으로 하여금 그림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하는 방식
‘회화성’/‘조각성’ 이란 무엇인가. 둘 사이의 조율-줄타기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That’s life. 모두가 입버릇처럼 말하지
형상으로 감싸진 비어 있음이 오히려 본질이 되는 것. 형상이 무엇을 채우는가보다 그것이 무엇을 남기는가, 무엇을 비워두는가.
형상이 감싸는 여백. 의도적으로 비움을 남겨둔 것. 의도적으로 비움을 남겨둔 것. 말하지 않음으로 말해지는 것들. 비어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여백은 대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 3차원의 영역 - 관객 - 체험적 여백 (단일 작업 차원이 아닌, 전시 공간에 놓여져 관객과의 조우를 전제로 했을 때 유효한 것)
작업 내부의 빈 공간, 작업 사이사이, 전시장 동선, 관객의 이동 경로까 지 모두 작업의 일부. 걷고, 멈추고, 마주하는 것
형상이 점유한 외부와 그 사이 공간이 상호 긴장을 이루며 의미를 만든다. 형상과 형상 사이 - 내부의 빈 공간 - 외부의 음영과 간극
모든 ‘비어 있음’들의 흐름. 비어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남겨졌기 때문. 침묵과 멈춤 속에 머무는 OO의 흔적
겉으론 형태를 갖추었으나 속은 공허한 구조 — 결국 집을 짓는 동시에, 부재를 확인하는 방식. 고정된 사물이 아닌 유기체적 껍질.
벽을 떠난 그림이 임시로 자리하는 공간, 혹은 새로운 지지체로서의 장소
작품이 스스로를 세우는 행위 - 균형을 잡는 과정 자체
‘벽 이후’의 회화를 상정한다. 시작과 끝이 흐릿한 시간 속에서, 회화는 더 이상 벽에 기대지 않고 서 있는 존재가 된다.
지탱되지 않는 구조의 껍질을 반복해서 세우는 행위. 공간·구조·이미지 사이의 관계
자립적 껍질 - 관객과의 조우 - 이미지와 구조의 경계
‘집’, ‘결핍’, ‘되돌아갈 수 없음’, ‘기도’, ‘실패한 형상화’, ‘무응답의 여백’
1.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2. 왜 나는 예술을 해야만 하는가?
3. 나의 예술로 타인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4. 나의 작업이 사회나 예술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거나 기여할 수 있는가?
5. 현재의 나의 방법(기법, 접근법)이 자신의 예술관 및 예술목적에 부합하는가?
6. 사용하는 매체(회화, 조각, 사진, 영상, 오브제, 텍스트, 설치)는 7. 본인의 작업에 적합하고 타인과 차별점을 둘 수 있는가?
8. 작업에 대한 접근법과 제작방법론이 타인과 대별될 수 있는가?
9. 자신의 작업과정과 절차를 기술하시오 (자신만의 도식으로)
10. 왜 현재(현재의 화면구성 측면과 디스플레이 측면에서)의 포맷을 사용하는가?
11. 왜 이러한(현재 작업의) 컬러를 사용하는가?
12. 자신의 작업은 미술사와 어떠한 맥락성을 지니는가?
13. 자신의 작업은 동시대적 현안을 다룰 수 있는가?
14. 예술은 꼭 타인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리좀]_다수의 출입구의 비계층적 지식 네트워크, 시작도 끝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으며 경직된 구성/지배 개념에 저항, 이종적 요소를 연계시키는 능력 지닌 사상/연구
‘리좀적 작품'-’리좀적/비선형적 연결'
- 인위적 통제, 계층적 구조 없이도 모든 것 연결시키는 것
- 다양한 출처의 개별 단위들 총체로 ‘연결된 무언가’ 연상시키기
- 제각각인 단위체 사이 시각적/심리적/철학적 연관성-의미 부여는 관객의 몫
- 뜻밖의 병치/접속/분열/다양성
- “장르/주체의 경계 뛰어넘으면서, 지식의 망이 섭렵하기에 너무 넓고 복잡하더라도 ‘접속'은 항상 존재 가능"
* 의미가 열려있을지라도, 내용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체성 Identity]
- 개인으로서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 뿐만 아니라 집단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누구인가 질문하는 것
- 거주 공간의 이동/변위와 정체성
- ‘장소'에 결속되는 정체성
‘Otherness’
<Fluid identity 유동적 정체성>
All in all is all we are...[@+@’+리좀] 으로서의 이미지 구성
‘Post-Human’ 과 ‘Being way too human’
지연/유예/약속/불확정성/무한 미루기/자아의 경계/버티는 것의 윤리
* 관객으로서 이미지의 흐름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점유하는 것
* 동시에 양쪽을 볼 수 없기에, 어느 쪽을 보고, 포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 - 완전한 감상이 불가능하다는, 관람에 있어서의 무력함 - ObDachlos_입방체 회화의 관람 방식
* ObDachlos_각진 모서리와 그에 따른 두 면을 지닌 입방체 형태. 각각의 면에는 상이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을 것. 양쪽 면을 동시에 온전히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리좀적/비선형적으로 어떻게든 연결-접속된 상태일 것.
연결된 부분들의 총체가 어떠한 ‘내러티브’ 따위의 것 일수도, 아닐수도...불확실함을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구조. 동전의 양면은 한몸. 어느 면을 드러내는가의 차이
충족되지 않는 것을 향한 형상화, 사라진 것을 붙잡으려는,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몸짓. ‘환유'의 방식, 부분으로 전체를 표상하기
‘빈 용기 Empty Vessel’
[실연하는 몸 Body]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What will Become of Me?>
* 관객이 신체적 행위의 흔적 인지할 때, 어떤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가"
[시간 Time]
- ‘내러티브' 없는 연속
- 시작/중간/끝을 가리키는 줄거리의 부재
- “목적도 결과도 없이 그냥 일어날 뿐"
[육화 embody] - [재현 represent]
<일이 일어나는 방식 The Way Thing Go> ‘연속된 시간'의 육화
<폭발 실연 Demo> 순간의 ‘찰나’를 재현-가시성 visibility 의 최극단 영역
* [실제 사건 발생의 시간 - 작품이 묘사하는(정지된) 시간 - 관람자의 경험의 시간] 구조의 여러 층위로 시간의 국면을 다루는 것
[기념비] : ‘사건’을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구상/추상 조각
[다중삽화 형식] : ‘사건’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같은 이야기에서 다수의 장면 재현
* ”[지금] [여기] 있는 [이미지]는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다"
* 여러 에피소드의 중첩
[동시적 시간 simultaneous time]
- 동시성 : 지속되지 않는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것 포괄
- 고대 신화 (꿈의 시간) ~ 인터넷 상 시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어떤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보의 흐름) 모두 포함
- ‘순간'을 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 시간은 감정(사건/특성)과 긴밀히 연결된 감정적 특질의 것으로 그 ‘지속’을 인식한다_’분위기 mood’
[시간의 구조]
- ‘지속'
- ‘속도'
- ‘리듬'
- ‘방향'
* ’충돌'/’혼돈'의 상태로 ‘시간의 파편'을 묘사하는 것 - 하이테크 시대가 정보/사건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
* ’정보의 동시성/계속되는 과부하는 무언가'를 일관된 인과관계로 설명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시대 (광대한 정보 저장된 전자 데이터베이스, 디지털 기술의 접근성)
[시간을 파편화하기]
* ’시간의 파편화' : 기억/꿈의 과정 비유적으로 담아내기 용이한 수단_기억/꿈 속에서 시간의 구조는 끊임없이 끊어지고, 의미는 덧없이 부유하기 때문
* 논리적 흐름/관계 설정x, 상이한 맥락의 이미지, 사물, 양식 병치/중첩시켜 ‘시간적 어긋남' 만들어 내는 방식
* ‘중첩 Layering’, 정답 없는 복잡한 수수께끼 조립하는 작업
[실제 시간 real time]
- 상업 영화/TV 통해 익숙해진 ‘인공적인 시간'에 대한 반작용
- [사진 조합으로 어떤 풍경/대상 재현하는 방식] 과 [실제 우리가 풍경/대상을 보는 방식_조금씩 겹쳐지고 분절된 시선]
-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지시한 고정 속도를 유지할 것을 강요하는 영화/필름과 달리, 실제 세상에서 그러하듯 여유있게 바라볼 시간을 제시하는 것
- 관객이 재량껏 앞뒤 안팎으로 이동하며 본인 속도대로 감상할 수 있는 이야기 전달 방식 탐구
“왜 느림의 즐거움이 사라졌는가?”
* 현 우리 시대의 시간 감각은 전 세대에 비해 빨라짐
* “걷는 속도를 일부러 급격히 늦추면 느려진 보행속도와 관찰자의 몸에 내재된 익숙한 시간 감각의 충돌이 선명히 드러난다.”
* ‘시간 리듬' - ‘느림 slowness’ - ‘가속'
* 우리가 작품을 관람할 때는 매우 집중 상태, 미묘한 변화도 큰 의미를 지닌다
* “극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어떤 사건을 지켜보는 것은 [전체 구조]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온전히 사로잡히는 경험"
[끝없음을 탐색하기]
* ‘끝없음 endlessness’ = 정신적 깨달음/초월적 우주의 무한x
= 현대 (영적 가치 이후 post spiritual의 시대) 생활의 의미 없는 세부를 따분하게 되풀이하는 극도의 지루함-권태에 기인하는 끝없음
= 신경증적 강박에서 쳇바퀴 돌리듯 반복하는 끝없음
= 시작과 끝의 하나된 연결, 시작/종결의 구분x
* ‘왜'라는 설득력 있는 이유 찾기 - ‘동기'는 언제나 문제시되고 의심해야 하는 것
[벽화] - [공적인 담화 - 사적인 담화의 차이] - [크기/스케일_거대한 스케일에서 비롯되는 목소리의 증폭, 역사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있게 만드는 것]
[’과거를 재활용’함으로써 ‘현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식’]
- 현재 = 과거의 유물을 개조한 것
- 양식의 급변, 잡종의 혼성체
[현재를 ‘재설정’하기]
- 우리가 현재를 이해하는 방식 변화시키고자 하는 결의
- 우리가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시간은 무너져 내린다
- 한때는 현재였으나 이제는 과거인 시간이 또 한번 생생한 현재가 되는 것
- 현재는 새로운 맥락으로 나타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다 비판적으로 보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_TV 뉴스/신문 보도가 진실이라 믿는 태도] - [우리 자신 ‘집단 기억’의 구성] - [매개 역할하는 ‘언어의 힘']
* ’자서전'과 ‘사회사'는 구분된 영역x,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 ‘문화'의 깊은 영향, ‘작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더 큰 공공의 사건' + 역사에 기반한 ‘사회적 관념'에 연루됨 (+@감정과의 결합)
[과거를 기념하기]
- 기념비 memorial (죽은 자에게 바치는)
- 기념물 monument (과거에 바치는)
- 정보화 시대-정보의 과잉이 ‘기억 과정'에 가한 커다란 충격
- “데이터 뱅크와 이미지 트랙에 더 많은 기억이 저장될수록 우리 문화가 기억하려는 의지, 기억할 수 있는 역량은 줄어든다.”
- “우리는 점차 ‘개인'이자 ‘공동체'로서 기억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대신 기술이 보충한 인공적이고 매개된 메모리 뱅크에 의존한다.”
[아카이브의 동시성 synchronicity] - 시간을 사라지게 하고 기억을 혼란시키는 상태
[시간적 정박 temporal anchoring]의 형태 (오늘날 사회에서 ‘기억'이 강조되는 현상_하이테크 시대의 기억상실에 대한 저항?)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물'을 제작하여 관객이 천천히 감상 가능한 형식으로, 사색할 시간 제공하고 우리의 ‘집단 망각'에 저항하기
* ‘시간'은 관객의 체험에도 중심적 요소_나 역시 내 작업 중 어떤 것도 고정된 사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기체에 가까운 어떤 것에 가깝다.
* [개인적 여정/체험] ⇒ [집단적 여정/체험] 으로의 이행, 나아가기
* “과거는 현재 속에서 떠오른다"
- 스스로를 현재 안에 삽입하는 과거의 메아리_이때 원래의 모양/의미는 시간차에 의해 왜곡됨
*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던 세계관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 현재가 과거의 집적이라면, 그런데 그 과거가 계속해서 변한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우리는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 “시간적 왜곡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며, 현재를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복잡/모호한 관계]와 [시간이 만들어내는 변형과 장난]을 바탕으로 [시간을 탐색하기]
* 작업 재료(물건/물질)의 개념적 변화 + 물리적 변화 ⇒ ‘시간이 나타나는 방식_육화'
* “[형태]와 [의미]가 끊임없이 변하는 [물리적 실체]의 형태로 경험했을 때 [시간]을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 ”더이상 전체의 부분이 아니지만, 여전히 중력의 끌어당김에는 저항하는 것"
하드웨어/몸체/형식_지난한,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으로 작업을 제작한다. 그 과정으로 작업에 남은 내 몸/손의 흔적+재료에서 비롯한 암각화와 같은 인상(+@금속성 템페라 Metallic temepera)으로 시간을 육화하는 방식. 왜?
소프트웨어/화면 혹은 이미지/내용_상이한 이미지 뒤섞기, 중첩 Layering 으로 ‘시간적 어긋남' 만들어내기. 무엇을? 왜? (이미지 선택 및 동기의 문제)
무엇을-어떻게-왜...
땀흘려가며 지지체를 깎아 만들고, 그 위에 손수 닥죽을 겹겹이 쌓아 페인팅이 이루어질 바탕/종이를 만들고(우스갯소리 반 진심 반, 물아합일의 시간이라 칭할만큼 고된 과정이다), 건조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이미지를 그리고 레이어링해가며 또 그리고, 다시 그리고, 뒤섞어가며 또 그리고...그럴듯한 시간적 어긋남/얽히고설킴의 화면이 만들어졌다 싶으면 그림을 칼로 절개하여 지지체를 빼내어 속을 비우고, 재접합하고, 절개부위를 티안나게 메꾸고 보수하고...지난한 시간의 육화와 속이 빈, 시간적 어긋남의 화면이 유기체에 가까운 어떤 것...왜?
[장소 Place]
- <시간>과 <공간>은 <장소>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진다
* 장소
- 표면적 외양 + 은유적/상징적 의미
- 인간 행위 벌어지는 무대, 특정 시대정신이 주입된 환경
- 널리 알려진 특정 의미 지닐수도, 그 장소에 친숙한 이들에게만 알려진 숨은 뜻 지닐수도
* [장소]는 [시간]이라는 주제와 상호 교차함 (특히 기억/역사)
- 장소는 현실의 물질처럼 [사건 event]에 해당_장소가 필연적으로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
- 장소는 정체성/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 [장소 place] = [위치 location]
- 아주 넓을 수도,작을 수도, 실제일 수도, 가상일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비非장소 nonplace 일 수도 있음_사이버스페이스)
- ‘가능성, ‘가정', ‘환상' 이 일어나는 곳, ‘무언가가 일어나는 어떤 곳'
* [장소]에는 [지각 perception]과 [인식 cognition]이 모두 작용
-장소를 정의하는 것은 무언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여기에 속하는가?
-이곳은 누구의 장소인가?
가상이란 환상의 영역으로, 시간을 초월하는(a-temporal) 특징을 지닌다. 역사의 조건에서 해방되어 있기 때문.
*특정 사건이 ‘일어난다 take place’
우리가 ‘제자리에 있다 in place’, ‘제자리가 아니다 out of place’ ⇒ [사건 event]의 발생과 [장소 place]의 존재
* ”장소를 탐색하는 능력은 인간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유목민들은 ‘위치'를 파악하는 데 관심 가졌을 것. 특정 지역에 정착해 오랜 세월 보낸 문명사회도 마찬가지 였을 것"
*장소는 ‘가치’를 지닌다
- 장소의 상징적 가치 = 심리적 의미의 축적
* [공간 space] - [장소 place]의 사회적/심리적 측면
- 변화할 수 있으며, 새로운 거주자들이 장소를 점유하면서 재정의됨
- 같은 장소에 다수의 심리적 공간 동시 존재 가능
- 장소는 물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듯이 문화적으로도 변화 가능
- 새로운 심리적 공간이 기존의 공간 대체/공존
[풍경화]와 [산수]
<(대부분의) 장소 place는 공간 space 속에 존재한다>
- ‘실제 장소' : [공간]이라는 일상생활 경험 펼쳐지는 3차원의 장 안에 존재
* [공간 space]은 - 자연적일 수도
- 부조처럼 납작할 수도
- 입체주의 조각(’형상’을 ‘구성’한 것)처럼 중량이 텅 빌 수도
- ‘장소의 공간'은 비디오 슬라이드/빛의 영사 통해 상호 침투될수도
- 소리/냄새가 공간을 채우고/스며들 수도
* 2차원 매체에서의 공간 처리/재현 방식 : 환영적 방식(포토 리얼리즘/마술적 리얼리즘/자연주의 리얼리즘) ~ 도식적 처리, 추상
- 평면 회화(15C~19C 서구) 선 원근법/대기 원근법 : ‘특정 시점'에서 관찰자가 움직이지 않을 때 보이는 풍경으로 물리적 공간 묘사(환영적 이미지)
* 20C 2차원 매체 대안적 공간 시스템 : [한 작품 안에 물리적 공간 분절적으로 재현]
[분절적 재현 disjunctive representation] : 동시 공존하는 다수 공간에 대한 다수 시점
- 조립된 환경의 단편 겹치기, Layering으로 특정 공간 특징 구축/해체하기
[지도 제작 기법/개념/이미지 도입하기]
- ‘지도 작성법' : 정보 층층이 겹쳐놓을 수 있고
- 고정된 단일 시점에 갇히지 않고 장소 기록 가능 (모든 ‘위치 location’은 동시에 존재)
- ‘관찰자'는 지도 위 모든 점 위에서 같은 거리 유지한 채로 떠 있을 수 있음 (유유자적, 너무나도 시끄러운 세상 한발 물러선 채로 세상사를 관조하는 지도 제작자의 마음가짐...)
- +@ GPS 위성 시스템 등의 신기술
우리는 길을 잃었는가? 그들이 길을 잃었는가? 작가가 길을 잃은 것인가?
* 조각/설치 등 3차원 매체에서의 공간 표현
- 작가의 공간 흐름 조정, 그에 따른 관객의 공간 속으로의 빠져듦
- 회화/부조를 볼 때 변함없이 정면 시점이 지배적인 것과는 달리, 3차원 매체에서 ‘시점'은 어느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
>>부피를 부여받아 3차원의 영역에 들어선 그림은 어떻게 감상할 수 있는가. 어느 시점도 관람의 절대적인 시점이 아니다. 각도마다 다르게 보인다. 관객으로 하여금 선택의 문제를 부여하는 것. 페인팅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굳이굳이 입체 형태에 환영적 이미지를 그려넣는 것은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필연적으로 왜곡(보는 각도에 따라)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그림. 보는 방식(시지각이 지닌 한계는 물론이거니와)-나아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를테면 “사람은 보고싶은 대로 본다/“보고 싶은 것만 본다_선택적 인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_확증편향”따위의 것들에 태클을 걸고자 함인가. 청개구리와 같은 심보로 세계관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_분명한 것을 분명하지 않게 만들어 제시하는 것인가. 이또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그럴듯한 근거들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내 작업에 그럴듯한 당위를 덧씌우는 것으로 치부되고 말 것인가.
“당신이 눈으로 직접 사물을 볼 때처럼, ‘보는 것'은 여전히 ‘믿는 것'인가? 아니면 ‘표면'은 그 아래 내재된 것에 비하면 거짓일 뿐인가?”
“진실은 사물의 외양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생각과, 진실은 내부구조나 몸의 시스템처럼 표면 이외의 장소에 숨겨져 있다는 반대 의견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상태"
* 미술 작품은 [장소]안에 존재한다
* [전시의 맥락]과 무관하게 감상 할 수 있는 미술은 없다
* [보는 맥락]이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장소 특정성 site-specificity] -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가> + <무엇을 의미하는가> - <작품이 놓이는 공간 배치>
- ‘공간’의 구성 요소는 무수히 많다. 어떤 것도 가능 (공간의 크기, 일반적 특성, 구성하는 재료, 과거맥락의 활용, 역사적/정치적 중요 사건에서의 역할...)
자연적인 것은 무엇인가? 누가/무엇이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떤 것이 만들어진 것인가를 조종하는가?
* [설치]는 관객을 ‘어떤 위치’에 ‘설정’하고 ‘개입’시키는 ‘구축된 환경'으로서 존재
- 우리가 ‘실제 장소'와 맞닥뜨리는 ‘마주침'을 증폭한 것
- ‘환경 전체'를 미술 작품으로 탈바꿈 시키기
⇒ 감정적/지적인 체험을 수밚하는 ‘신체 경험' 제공하는 것
⇒ 관객이 연극 무대로 걸어 들어가, 자신이 익명의 퍼포먼스 상상하도록 요청받고 있음을 깨닫는것
[장소 바라보기]
- ‘장소'의 촉각적/심리적 특질은 작품 내에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
- [장소를 바라보는 행위]는 사회적 관념에 의해 걸러진다
* [땅 land]은 자연적 현상/[풍경 landscape]는 문화적 구성체
* ‘장소'는 우리 ‘사고’와는 ‘독립된 바깥'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장소를 조직/해석하는 ‘개념'은 인간 사고의 발명/개입
‘기억된 장소의 이미지' ⇒ 개인적 기억/잊힌 감정을 환기시키는 장소의 힘
‘실제 세계'x, 그것을 모방한 사진에 근거한 작품에서 ‘실제 장소'의 일차적 제거 ⇒ 작품의 주제_해당 장소x, 사진에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 ⇒ ‘장소의 실제성' 또 한번 제거됨
* [장소]는 그곳에서 발견되는 [행동 패턴]으로 정의되기도_주변 사물과 연결되어
⇒ [도로 위의 자동차들, 교통 표지판_느림/가속/정지]-[신호등과 횡단보도_기다림] ⇒ [시간]을 직면하여 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 (시간 앞에 인간은 항상 무력할 수 밖에, 거스르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무용할 것, 트롤리 딜레마)
⇒ 행동 패턴에 근거한 [장소_시간+공간]의 메타포..._OO에게 한없이 불확실함을 부여하며, 동시에 어찌 할 도리도 없이 이미 결정된 채로 다가오는 것들. 앞엔 모든 것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 오늘날 도시 = 인간 활동이 벌어지는 일차적인 장
*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장소를 반영하는 것처럼, 장소 또한 그 속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
[실제 장소/만들어진 장소]
- ’실제로 존재하는’ ‘만들어진 환경’ synthetic environment
- 가상, 실제 뒤섞인 작가들의 상상으로 꾸며낸 ‘환상의 세계'
⇒ 실제/가상, 자연/문화를 가르는 거짓된 이분법에 어떻게 도전하고 표현하는가
⇒ 두 영역 뒤섞인 혼성 공간을 어떻게 탐험하는가
* 장소에 대한 모든 예술적 재현(자연 풍경을 그린 것이라도)은 사회적 구조에 근거한 개념적인 함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합성 환경-디오라마 diorama] [구축된 장소의 인공성]
* [새롭게 고안된 환경에 대한 탐색]
⇒ 관객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 하는 것
⇒ 특정 장소에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재현하는 환경'은 ‘물리적 실존'과는 다른 어딘가,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는 어딘가'
[장소 없는 공간 placeless space] - 고정된 지리적 위치 없는 장소의 네트워크
[구조] - [액체 건축 liquid architecture]_자체 변화하거나 다수로 확장하는 공간_비非유클리드 공간 non-Euclidean space의 차원
[무엇이 공적이고, 무엇이 사적인가]
- 사적 공간(영역)/공적 공간(영역)의 경계 ⇒ 흐려짐
⇒ 통제력 상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이제는 절대항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적/공적 구분에 대한 관점 변화] - [점유하는 장소] - [그곳에서의 행동 양식] ⇒ 이들 간 어떤 영향관계가 작용하는가
[공간의 사회화]
[다층적 행위 layered behavior]_’공적인 행동'과 ‘사적인 행동'의 공존
⇒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수의 행동 규범. 공적인 자아 + 사적인 자아의 모순 없는 병행
*[집]은 전형적인 사적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라이버시는 긍정적/부정적 함의 모두 가진다.
- 보안, 안전의 제공
- 동시에 외부의 가능성, 기회로부터 차단되고 규칙에 종속된 감금의 장소
[사이 장소]
장소/지역/집/거주 ⇔ 장소 없음/전치 dislocation/집 없음/방랑
[비장소 nonplace] = 한 장소 →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한 통과로서의 중간 지점이자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형태를 한 지역적 특색 거세된 장소
⇒ ‘통과 transmit’의 장소, 익명성 + 자기 충족적, 기묘하게 친숙한 느낌 불러일으킴(특수성x)
*[남겨진 장소_거기]와 [채택된 장소_여기]
[변위 displacement]
- 사람, 자본, 디지털 정보, 생태학적 흐름이 지역/국가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오늘날의 이동
- ‘변위' 맥락에서의 ‘여행' = 상이한 언어/관습/물질 문화/사상 지닌 장소들 ‘사이를 통과하는 것'_<사이 in-betweenness>의 상태
*’실제 경험'이 어떻게 ‘장소'라는 감각에 고정되는가
*일어나는 ‘사건’이 평범한 것이든 신비하고 극적인 것이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경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특징 짓는다
*’공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_신체적/정서적 특수성
[공간의 생산] = [하부 구조_사물의 물리적/경제적 생산_물리적 공간화] + [상부 구조_지식/제도/관념/표상 등 정신적 생산물_심리적 공간(언론이 만들어내는 도시 이미지, 공동체, 국가에 대한 생각 등 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
[시각 예술] = [추상적 상징] + [재현 기호]의 [의사소통 형식]
언어(텍스트) : ‘의미 생산'의 동업자로서 작품에 개입
<언어는 의미를 만든다>_의미 표현 위한 언어 이용 8방식
-언어는 ‘기호'로 작용
-내러티브를 이야기 하거나 암시 가능
-은유의 기능(의미의 결합/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언어는 언어의 구조 자체를 해독할 수 있다
-제목, 캡션의 역할
-형식적 특징 때문에 도입될 수 있다
-사회/정치적 논평을 제공할 수 있다
-대화나 텍스트를 포함하는 인터렉티브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가 단어들을 숨겨진 의미로 환원할 때까지 언어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더 많다.”
*언어의 ‘투명성 transparency’ ⇒ 시각적 + 언어적 작용 (작품 내에서)
⇒ 언어적 강조와 시각적 강조 사이의 균형/변동
⇒ 작품 내에서 언어(단어/글자)가 구체적인 시각적 현존을 가지게 됨
⇒ 언어의 ‘물질적 특질'은 언어가 문법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거나 수정하면서 ‘의미의 또다른 운반체'가 됨
⇒ ‘읽히기도 하는 동시에 의식적으로 보이는 것'
⇒ ‘읽기'와 ‘보기' 사이의 왕복
*언어의 ‘불투명성 opacity’ ⇒ 언어/텍스트가 오로지 시각적인 차원에서만 작용하는 것(이때 텍스트=다른 시각 요소처럼 모양/재질/색깔로 ‘보이는 대상')
⇒ (외국어 신문 볼때처럼)텍스트=의미 없는 형태의 패턴
⇒ 의미의 운반체x, 물질적 재료로써의 측면
⇒ “언어의 의미론적 기능이 유보되고 간과된 감각적 측면이 전면에 대두됨에 따라 ‘관객'은 ‘의미의 바깥'에 놓이게 됨"
크레올화 creolilzation ≠ hybridization의 혼성화
⇒ 서로 다른 두 분야가 상호작용해 새로운 혼성 영역 만들어 내는 것
⇒ 혼성적인 것 만들거나 사고하는 방식 (특히 옛것 +새것의 혼합)
[인간이라는 조건 자체] ⇒ 영적인 것 탐색/우리의 존재와 사후의 삶에 대해 의문 품게 만드는 듯 ⇒ 우리는 우리 자신과 주변 세상의 연관에 대해 숙고하며,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 경험에 대해 검토한다
우리는 ‘포스트 post’시대에 산다. 현재 상태는 과거의 세계관으로부터 멀어지는 과도기로, 미래는 아직 성문화되지 않았고 ‘경계'는 모호하고 성글다 ⇒ 경계적 liminal
<바티나스 vatinas>라는 주제는 삶의 근본적인 긴장 중 하나인 세속적 쾌락, 성취의 즐거움, 그리고 필연적인 소멸에 대한 인식 사이의 갈등에 대한 것
[자기 소멸 self-annihilation] = 초월과 자유를 얻는 수단
변화, 극적인 결말, 관객의 조우(로 말미암아 맺는 관계)
모티프-매체의 관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존재의 본성을 결정하는 우리 자신의 ‘유한성’ 인지하는 것. [시간]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비디오]라는 재료는 매체 속성상 일시적인 존재의 허무함을 내재함
이미지는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존재한다. 그리고 스위치가 꺼지면 사라진다.
1. 나는 그린다 - 고로 존재한다
2. 나는 존재한다 - 고로 사라질 것이다
3. 나는 사라진다 - 고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평면적으로(진부하게) 바라보는 것 아닌 불안정하고 소멸하며 파괴적인 것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
Can a person be Way Too Human? What does being too human really mean? Too Much? Too emotional? Too weird? Too woke? Too being pissed on by a horse?
사람이 너무 인간적일 수 있을까? 너무 인간적이라는 건 정말 무슨 뜻일까? 너무 지나친 걸까? 너무 감정적인 걸까? 너무 이상한 걸까? 너무 정신이 나간 걸까? 말에게 너무 심하게 오줌을 누는 걸까?
I’m so hungry, I dream of foods that don’t exist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slowly fade away.
OO은 우상 숭배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OO은 하나님만을 경배하므로. 혹은 OO의 이미지는 단지 상징적 형태일 뿐이며, OO은 단순한 이미지를 숭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한 계몽된 현대적 주체이므로. OO은 응징당해야 할 우상숭배자들이며 그들의 우상은 파괴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OO은 우상숭배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일 OO이 OO중 하나라면, OO은 분명 우상숭배자이다. 만일 OO이 OO중 하나라면, OO은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상숭배의 대가는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OO중에서는 그 누구도 우상이나 우상숭배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OO은 무엇을 원하는가?
지속적으로 기술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것들과 ‘자동제어장치'로서 관계 맺기
언어 너머의 심연, 시각 언어로써 우리를 되돌아보는 것
물질적인 동시에 가상적 육체를 전시하는 것
사람들은 모두 자기 어머니의 사진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훼손/파괴하는 것에 주저하는, 기꺼이 특별한 예외를 둔다.
투명인간은 실상 너무 지나치게 잘 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_지나치게 잘 보이는hypervisible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
1. 보여지고 싶다
2. 보여지고 싶지 않다.
3. 보여지는 것에 관심 없다.
다시, OO은 무엇을 원하는가?
OO이 원하는 것=단지 OO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
-무엇을 결여하고 있는가
-무엇을 생략하고 있는가
-그 지워진 영역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지점은 무엇인가
-일그러지고 흐릿한 것은 무엇인가
-그 테두리/경계가 배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재현의 각도가 우리에게 보지 못하게 만들고, OO이 보여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는 이로 하여금 엿보기를 들킨 관음증자로 만드는 동시에, 치명적인 눈을 지닌 메두사로 만드는 것
살아 있는 것=죽을 수 있는 어떤 것
살아 있는living 죽은dead
생명 없는inanimate 죽지 않은undead
과도기 대상transitional object 은 버려진다 해도 잊히지도, 애도되지도 않는다. 장난감, 학습기계 따위의 사랑이자 학대 대상 또는 무시 대상. 그저 보내기letting go 가 초점이 될 뿐인 것.
Thirst is everything. It’s the real thing.
어떤 모습의 떠오름Dawning of an aspect_’이것’을 ‘저것'으로 보는 새로운 방식
발견된 대상, 불쾌한objectional 대상, 실물 교훈object lesson
비천한abject 대상, 불쾌한 이미지의 산물들
주운 아이Foundling
테무나Temunah_어떤 대상의 형식/외적 형태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 원칙
속아넘어간baboozled 타협 형성물compromise formation
큰 희생을 요구하는 신이자, 사람이자, 사물인 몰록Moloch은 어린 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보이지 않고 보기Seeing without being seen
바다에 가설적 그물을 던져 무엇이 걸려드는지 살펴보는 것
‘인간 육체'란 더이상 없다. 성별화된 육체, 욕망하는 육체, 인종화된 육체, 의학적 육체, 조각된 육체, 과학기술적 육체, 고통/쾌락을 느끼는 육체만이 있을 뿐.
인간 육체는 무한히 변형 가능한 보철물/장기의 조합처럼 보이게 되었고, 포스트 휴먼 감수성, 사이보그의 의식을 표현하게 되었다.
‘어둠의 구현'으로 부재/음화 흔적/공백으로 지시, 제시하는 것
비어있음으로 인해 배가되는, 환기되는 내적공간inscape, 내면의 공간
상호적 탈위치
[형상-배경-관객]의 관계
‘국가'란 상상된 공동체로써, 이미지/담론/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일체가 결합된 문화적 구성물이다
머리 없음headless 와 정신 없음mindless
참수decapitation의 방식과 이발소
OO은 진실로 모든 곳에 있으나 아무곳에도 없다
OO은 길 위에, 차 안에, 가고 오고 멈춰서며 있다
어떤 지점도 다른 지점과 아무런 매개 없이, 페이지만 넘기면 닿을 수 있고 OO의 그 어떤 측면도 발견되지 않는다
실제 공간/시간상의 직선적 이동경로와 아무런 관계 없는 이접적인 배열
어디에나 있고 유령처럼 그것을 지나쳐 가는 것
반쯤만 살아 있는 언캐니한 시체, 완전히 죽지 않은 자들의 형상들에 쫒기는 것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
흑인이 흑인으로 분장을 하는 것
디지털 시대는 컴퓨터/인터넷에 의해 직접적인 기술방식으로 기술적으로 결정되기는 커녕, 육체적/아날로그적/비 디지털적인 새로운 형태의 경험들을 양산하고 있다
시원적 시간deep time의 관점에서 우리의 조건 다시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가,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시각vision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는다
보기seeing가 무엇인지 볼see수 없다
보기 자체를 보여주는 것
보기 를 전시하는 것
보기를 보여주기showing seeing
만질 수 있는 것the tactile
촉각적인 것the haptic
간과된 것the overlooked
보지 못한 것the unseen
공감각
청각적인것
맹목blindness
보이지 않는 것the invisible
볼 수 없는 것the unseeable
아무리 헤집어도 늘 빈칸 뿐인 시간을 채우는 것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다.
지평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평선으로 보이는 그 아득한 지점에는 그런 선이 없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선이다.
어떠한 교훈도 없고 극적인 긴장도 반전도 결론도 없는,순수하게 공허를 채우기 위한 이야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끝없는 기다림의이야기
하늘을 그린다는 것=허공 위에 또 하나의 허공을 겹쳐놓는 일. 결국 구름, 새, 비행기, 지평선 같이 하늘 아닌 것들을 그려놓고 하늘을 그렸다고 말 할 수 밖에.
끊임없이 ‘어제'를 버리고 그 빈자리에 ‘내일'을 채워 넣는 것. 습관/취향/신념/기억까지. 짐이 될 만한 무엇이든 포기하는 것.
그 이전에, ‘오늘'은? 내일이라 칭하는 것. 당연히 당도하리라 믿어의심치 않는 그것 이전의 오늘.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연속적-직선적-종적-선형의 흐름인듯 보이는 체계의 것. 만들어진 것.
일순간 붕괴될 가능성을 내재한 체계 속, 미세한/불확실한/불분명한/지표를 알 수 없는 파편들로써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직전의 시간/순간. 지금 이 순간:항상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 막 일어나려 하거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태. 우리는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은 시간 속에 있다. 한가지 일이 끝나는 듯, 곧바로 또다른 일. 이런 상태의 끝없는 반복. 현실의 삶에 영화같은 끝은 없다.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허공에 던져진 채 바닥 없는 곳에 끝없이 추락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회전의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
당신은 괜찮냐는 질문. 그리고, I am okay. 나는 괜찮아. 잘 지내니 나쁘지 않아. 아무 문제 없어. 잘 되고 있어. 걱정할 것 없어.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둬. 세상은 문제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아. 아무일 없이 잘 지내. 당신의 배려는 고맙지만 받고 싶지 않아.의 거부/단절의 의지, 의사표명
육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시켜 잡념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는 것.
가리고-숨기고-드러내는 것
천장/바닥. 안/밖/속/틈새. 지상/지하/허공. 공간/형태/부피/장소/환경. 앞/뒤. 이면/내면/표면. 시간/공간.
죽은 것/산 것/생명 없는 것/만들어진 것.
뜨거운 것/차가운 것.
지워진 것/가려진 것/덮힌 것/흐려진 것/뭉개진 것.
봄/여름/가을/겨울
모든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무엇이건 갖다 붙일 수 있는 것
학문을 하는데 세 가지 여가(三餘)만 있으면 충분하다.
後者日之餘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고,
冬者歲之餘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이며,
陰雨者時之餘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은 맑게 갠 날의 나머지이다.
畵者工之餘 詩者睡之餘 生者劫之餘
(화자공지여 시자수지여 생자겁지여)
그림은 솜씨의 나머지요 시는 졸음의 나머지이며 삶은 영겁의 나머지라
-三餘,제백석-
All in all is all we are모든 존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Jesus doesn’t want me for a sunbeam. With the lights out. Married/Buried. I feel as one.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What else should I do. It’s fun to pretend. Be here now. Eternal sunshine with a spotted mind. CLEAN깨끗함. SERENE고요함. SOBER선명함. 슴슴하게 여기 있기. 아지랑이. Sometimes the silence is all we know. I’m just a fucked up OO trying to find peace of mind. What am I now. What arme YoIu. Who arme Yolu. Live a little. Breakable heaven. Be in the middle of nowhere. 커튼뒤에서. 어찌 할 줄 모름. 어디로 갈 지 모름. 무저갱. ILL HV HL. 그런게 있어요. Endless/Nameless. 내일,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내일. Electric sansevieria. The existentional Trolley dillema. Hermeneutic Trolley dillema. Newcomb’s Trolley problem. Cutting-edge paper ship of Theseus. 무기징역 2년. 한달연봉 3억. Still, life. 네모난 동그라미. 중력을 거스르는 물방울. We---ee ha----------ppy fee--e---ew. A different kind of nothing
시각언어를 다루는 자에게 있어, 흡연이라는 행위는 자신의 호흡에서부터 한숨까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 일체를 스스로 시각화해서 보는 것과 같다.
두려움=우리가 딛고 서있는 바닥. 넘지 못하는 국경. 우리의 운명.
‘두려움을 다루는 일’
기념비=삶이 아무 흔적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버려지는/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
OO이 하는 일=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을 다루는 일.분명한 이름으로/말로/언어로 분류, 구분, 설명할 수 없기에 그저 그 앞에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
-침묵=말을 하는 다른방법
-말=소리를 지르는 다른 방법
-노래=소리 내어 우는 방법
-시=비명을 지르는 다른 방법
-조각=유리병 속의 편지
三界の狂人は狂わせることを知らず。
삼계의 광인은 미친 것을 모른다.
四生の盲者は盲なることを識らず。
사생의 맹인은 눈이 먼 것을 알지 못한다.
生まれ生まれ生まれ生まれて生の始めに暗く、
우리는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나도 삶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死に死に死に死んで死の終りに冥し。
죽고 죽고 죽고 죽어도 죽음의 끝을 알지 못하리라.